종로3가의 대표적인 게이바 "프렌즈"의 천정남님 인터뷰
천정남님은 종로3가의 게이 바 프렌즈를 운영하고 계시고, 매해 퀴어문화축제를 비롯한 성소수자 단체들에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해주고 계신다. 또한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1세대 활동가이시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이력 때문에, 프렌즈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사랑방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은석: 천정남님께서는 퀴어문화축제를 비롯한 성소수자 단체들에게 늘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해주시는데요. 이런 질문 이상하시겠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이유가 따로 있으신가요?
천정남: 후원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우리 삶을 좀 더 나아지게 하고, 인권운동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단체들이 필요하고, 그 단체들에게는 활동가들이 필요하니까요. 활동가들이 열심히 활동하려면 재정적인 뒷받침이 되어야하고요.
후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후원을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은석: 천정남님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후원을 많이 해주곤 하시는데요. 그중에서도 천정남님의 스케일은 남다르시잖아요. 혹시 98년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대표로 활동했던 경험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천정남: 아마 제가 친구사이 5대 대표였을 거예요. 제가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1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모범을 보여야 한다 생각하고요. 앞으로도 우리가 보여주는 활동·후원들이 지금의 활동가들이나 미래의 활동가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죠. 우리가 한창 활동하던 당시보단 나이도 들었고, 경제적으로도 좀 나아져서 후원으로 더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은석: 친구사이의 수영 소모임인 "마린보이"도 98년에 천정남님께서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마린보이는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모임이고요. 처음에 어떤 계기로 모임을 꾸리게 되셨나요?
천정남: 처음엔 친구사이에서 친한 멤버들끼리 동네에서 저녁마다 수영을 같이하던 게 계기가 돼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당시에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인권운동을 무서워하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마린보이 같은 모임은 사람들이 좀 더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거든요.
마린보이의 기존 회원들이 친구사이 핵심 회원이었기 때문에 뒤풀이를 가지며 신입회원들을 자연스럽게 친구사이로 이끌 수 있었죠. 그러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됐습니다. 퀴어퍼레이드 땐 핫팬츠 등으로 옷을 맞춰 입고 라인댄스도 같이 췄고요. 초창기 몇 년 동안에는 마린보이가 친구사이 주축이었죠. 마린보이가 어느 정도 잘 되면서 게이코러스 "지보이스"도 만들게 되었고, 마린보이 멤버들이 지보이스 멤버도 되어서 잘 활동하고 있고요.
은석: 저는 아무래도 친구사이를 바깥에서 보는 입장인데요, 성소수자 단체들 중에서도 친구사이가 특별한 위치에 있더라고요. 커뮤니티 중심적이면서도 그걸 인권운동으로 풀어나가는 점이 친구사이의 가장 큰 특징이고, 친구사이가 친근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된 이유인 것 같아요. 예전의 친구사이 소식지를 봐도, 커뮤니티와 인권운동의 간극을 좁히려고 계속 노력한 것 같던데, 그런 고민의 지점들이 천정남님께도 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천정남: 커뮤니티와 인권운동 사이의 간극은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아니더라도 모든 운동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깥에서 바라보죠. 앞으로 시간이 많이 흐르면 지지자들이 더 늘어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비약적으로 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지거나 뛰어들진 않겠죠.
그래도 과거와 비교해보면 고무적인 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참여를 하지는 않더라도, 후원은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당장 퀴어문화축제를 보더라도, 지역·직업별 등으로 모임을 꾸려서 후원하는 걸 보면 고무적이라 말할 수 있겠죠.
가게 오는 손님들한테도 늘 후원을 제안하곤 합니다. 안타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단골이고, 나름 친하다고 생각한 손님들에게 보통 후원을 제안하는데, 딱 거절당했을 때는 당황스럽더라고요. 더 안타까운 건 그러고 나서 그 손님들도 가게를 다시 안 오십니다. 물론 놀러 왔는데 후원 제안을 하면 손님 입장에선 불편하겠죠. 그래서 친하다고 생각한 손님들에게 제안하는 건데...
은석: 사업하시면서 후원을 직접적으로 제안하시는 분은 천정남님 밖에 못 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에게 프렌즈는 활동가들이 많이 찾아오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사랑방이란 느낌이 있어요.
처음 오픈하실 땐 친구사이 대표 임기가 끝난 후였잖아요. 그때 구상했던 프렌즈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천정남: 저는 어쨌거나 활동을 했던 사람이고, 계속 인권운동에 관심이 있고, 결국 지금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게이 바 운영을 '이 또한 인권운동의 일환'으로 여겼죠. 여기서 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니까 이 사람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인권운동에 대한 생각들, 비전들, 고민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고, 그러면서 사람들의 얘기를 참고해가며 활동에 반영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지금도 그렇지만- 초창기에는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었기 때문에 제가 그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친구처럼. 그래서 가게 이름을 프렌즈라고 지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프렌즈는 다른 가게들이랑 차이점이 있어요. 예를 들면, 포스터 하나를 붙이더라도 인권운동에 관련된 포스터만 가게에 붙입니다. 그저 상업적인 건 안 붙입니다. 애초에 만들었던 목적이 인권운동을 위해서였으니까. 지금도 거기서 크게 벗어날 마음은 없고요.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프렌즈라는 곳이, 자신이 놀러만 가도 인권운동에 일정 정도 기여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었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손님들이 우리 가게 와서 돈을 쓰면, 저는 돈을 벌고, 그걸 다시 인권운동에 일정 정도 좋게 쓰고 있습니다.
은석: 제가 알기로는 프렌즈가 원래는 소주방이었고, 1층에 오픈된 인테리어를 한 종로3가 최초의 게이업소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들 숨기는 데 급급했을 때, 어떻게 이런 인테리어를 실행할 수 있었나요?
천정남: 처음부터 종로3가에 없던 콘셉트였죠. 지금 종로3가에 흔한 형식의 소주방도 프렌즈가 처음이었습니다. 예전엔 식당 같은 느낌의 소주방들만 있었는데, 지금 20대들이 많이 가는 모던한 느낌의 소주방은 프렌즈가 처음이었어요.
물론 게이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게이들만의 공간으로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우리 인권운동을 퍼뜨리려면 우릴 지지하는 앨라이(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지지하는 비성소수자)도 많아져야 하는 거고, 그들과도 같이 어울려야 하는 건데, 그러자면 공간적으로도 괜찮아야 하니까요. 지금도 많은 게이업소들에 여성은 출입할 수 없지만, 프렌즈는 처음부터 모든 손님들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처음부터 1층에 자리 잡고 당당히 무지개 깃발을 걸고 영업했습니다.
은석: 이런 콘셉트의 게이 바가 지금은 종로3가에 많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불편해하는 손님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천정남: 당연히 불편하다는 손님들 많았고 무지개 깃발 떼라는 손님들도 많았죠. 그럼 저는 그냥 "아무도 몰라요~ 아는 사람들만 알아요~" 그랬고요. 그런데 어느 날 출근했는데 여러 개 달렸던 무지개 깃발이 없어진 적이 있었어요. 물증은 없었지만 그냥 불편했던 누군가가 떼버렸거니,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으니, 다른 게이 바들도 다 무지개 깃발 달았으면 좋겠어요.
은석: #프렌즈는갤러리다 해시태그를 요즘 밀고 계십니다. 프렌즈가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나요?
천정남: 프렌즈가 미래에 대한민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사에서 중요한 공간이었다는 평을 받을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저 생겨났다 없어지는 그런 게이 바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한국의 게이 바라고 하면 바로 프렌즈! 가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도 활동·후원들을 해나가고 있고요.
또, 프렌즈가 오래된 가게이긴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도 이 자리에 프렌즈란 이름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늘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하고요. 프렌즈라는 공간은 그대로 유지하되, 너무 정체되어 있으면 안 되니까 소프트웨어를 계속 변화시키고 있어요. 그래서 올해부턴 성소수자 창작자들의 전시를 계속 해나갈 계획입니다.
은석: 프렌즈를 만드셨을 당시의 소망대로, 천정남님은 손님들에게 상담도 많이 해주시는데요. 예전에 천정남님께서 "게이커플은 짧게 연애한다? 그거 편견이야"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본인도 인생의 파트너를 만나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시고요. 이러한 편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천정남: 요새는 이성애자들도 다 짧게 연애하잖아요. 그런데 게이들은 비교 대상을 결혼한 이성애자 커플로 삼으니까 자신들의 연애가 짧게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반(비성소수자) 부부들은 눈에 흔하게 보이니까요. 사실 이성애자들도 결혼 전의 연애기간은 굉장히 짧죠. 제 조카들만 봐도 그래요. 연애 기간의 길고 짧음이 좋고 나쁨의 문제도 아닙니다. 본인들이 길게 연애하고 싶으면 사실 노력이 필요한 일이에요. 연애하면서 늘 좋을 순 없죠. 좋은 순간 싫은 순간 헤어지고 싶은 순간 다 겪어나가면서 길게 연애하는 거죠.
친구사이엔 저희 커플 말고도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커플들이 많아요. 10년이 넘은 커플들도 여럿 있고, 7~8년 된 커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친구사이에선 다른 커플들을 보며 배우는 게 있고 같이 고민을 얘기할 수도 있으니 관계를 잘 유지해나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단체에 속하지 않았으니까, 우리처럼 오래 사귀는 게이 커플을 보기가 힘들어서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많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은석: 친구사이 커밍아웃 인터뷰 1호 인터뷰이세요. 그때 "게이실버타운"의 원대한 꿈을 말씀하셨는데, 지금도 그러한 꿈을 꾸고 계신가요?
천정남: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버타운이라고 이름 붙인 건, 한 지역에 모여 살자, 이런 뜻이었어요. 건물 하나에 같이 사는 게 아니라. 노후에 대한 불안이 이유는 아니었고, 어쨌거나 다들 여성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가정"을 이루는 삶을 살진 않을 테니까, 나중에 파트너가 있건 없건 간에 우리끼리 모여서 즐겁게 살자! 이런 취지였습니다. 우린 늙어서도 되게 재밌게 살 거 같아요.
은석: 실례일 수도 있는 질문인데요, 천정남님께서 생각하시는 본인의 노년의 삶은 어떠해야 한다고 계획하신 게 있나요? 실버타운 말고?
천정남: 농담반 진담반 사람들에게 "나는 100살까지 살 거야!"라고 말해요. 나중에 나이가 8~90이 되어서도 퀴어퍼레이드에서 신나게 춤추면서 살고 싶습니다. 어쨌거나 1세대 활동가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고, 아니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이왕이면 좋은 롤모델이 되며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지요.
우리가 20대 때엔 4~50대 게이들의 삶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20대 게이들은 우리를 볼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노년이 됐을 때에도 그때의 2~30대 게이들이 '저 나이에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본보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인권운동에 몸으로 못 뛰더라도 후원이라도 열심히 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고요.
은석: 올해부터 활동가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한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지요.
천정남: 원래는 연말에 활동가들을 위한 파티를 할까 생각했는데, 그거 보다는 그냥 돈으로 후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기획을 변경했고요. 이건 프렌즈와는 상관없이 제가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애초에는 1년에 100만원씩 활동가들을 위한 기금으로 내놓으려고 했는데, 몇몇 지인들에게 얘기했더니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혀서 금액을 좀 더 키우려고 기획 중입니다. 1년에 300만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매년 12월에 전달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매년 금액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해에는 동참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 큰 금액을 기금으로 내놓을 수 있겠고, 동참하겠다는 사람들이 없으면 저 혼자 100만원을 내놓을 수도 있는 것이겠고요. 물론 제가 늘 사람들을 설득하러 다니긴 할 겁니다.
이 인터뷰 나간 뒤에 동참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네요.
은석: 마지막 질문입니다. 후원자로서, 퀴어문화축제 참여자로서 바라는 점이 있나요?
천정남: 퀴어문화축제가 규모가 점점 커지다보니 혐오세력도 가시화, 조직화가 되었습니다. 퀴어문화축제의 활동가들이 혐오세력에게 위축되거나 상처 받지 말고 더 당차게 해나갔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신경 쓰지 말고 멋지게 활동하시라!" 이 말을 전합니다.
인터뷰어 | 양은석
종로3가의 대표적인 게이바 "프렌즈"의 천정남님 인터뷰
천정남님은 종로3가의 게이 바 프렌즈를 운영하고 계시고, 매해 퀴어문화축제를 비롯한 성소수자 단체들에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해주고 계신다. 또한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1세대 활동가이시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이력 때문에, 프렌즈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사랑방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은석: 천정남님께서는 퀴어문화축제를 비롯한 성소수자 단체들에게 늘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해주시는데요. 이런 질문 이상하시겠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이유가 따로 있으신가요?
천정남: 후원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우리 삶을 좀 더 나아지게 하고, 인권운동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단체들이 필요하고, 그 단체들에게는 활동가들이 필요하니까요. 활동가들이 열심히 활동하려면 재정적인 뒷받침이 되어야하고요.
후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후원을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은석: 천정남님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후원을 많이 해주곤 하시는데요. 그중에서도 천정남님의 스케일은 남다르시잖아요. 혹시 98년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대표로 활동했던 경험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천정남: 아마 제가 친구사이 5대 대표였을 거예요. 제가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1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모범을 보여야 한다 생각하고요. 앞으로도 우리가 보여주는 활동·후원들이 지금의 활동가들이나 미래의 활동가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죠. 우리가 한창 활동하던 당시보단 나이도 들었고, 경제적으로도 좀 나아져서 후원으로 더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은석: 친구사이의 수영 소모임인 "마린보이"도 98년에 천정남님께서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마린보이는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모임이고요. 처음에 어떤 계기로 모임을 꾸리게 되셨나요?
천정남: 처음엔 친구사이에서 친한 멤버들끼리 동네에서 저녁마다 수영을 같이하던 게 계기가 돼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당시에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인권운동을 무서워하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마린보이 같은 모임은 사람들이 좀 더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거든요.
마린보이의 기존 회원들이 친구사이 핵심 회원이었기 때문에 뒤풀이를 가지며 신입회원들을 자연스럽게 친구사이로 이끌 수 있었죠. 그러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됐습니다. 퀴어퍼레이드 땐 핫팬츠 등으로 옷을 맞춰 입고 라인댄스도 같이 췄고요. 초창기 몇 년 동안에는 마린보이가 친구사이 주축이었죠. 마린보이가 어느 정도 잘 되면서 게이코러스 "지보이스"도 만들게 되었고, 마린보이 멤버들이 지보이스 멤버도 되어서 잘 활동하고 있고요.
은석: 저는 아무래도 친구사이를 바깥에서 보는 입장인데요, 성소수자 단체들 중에서도 친구사이가 특별한 위치에 있더라고요. 커뮤니티 중심적이면서도 그걸 인권운동으로 풀어나가는 점이 친구사이의 가장 큰 특징이고, 친구사이가 친근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된 이유인 것 같아요. 예전의 친구사이 소식지를 봐도, 커뮤니티와 인권운동의 간극을 좁히려고 계속 노력한 것 같던데, 그런 고민의 지점들이 천정남님께도 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천정남: 커뮤니티와 인권운동 사이의 간극은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아니더라도 모든 운동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깥에서 바라보죠. 앞으로 시간이 많이 흐르면 지지자들이 더 늘어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비약적으로 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지거나 뛰어들진 않겠죠.
그래도 과거와 비교해보면 고무적인 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참여를 하지는 않더라도, 후원은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당장 퀴어문화축제를 보더라도, 지역·직업별 등으로 모임을 꾸려서 후원하는 걸 보면 고무적이라 말할 수 있겠죠.
가게 오는 손님들한테도 늘 후원을 제안하곤 합니다. 안타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단골이고, 나름 친하다고 생각한 손님들에게 보통 후원을 제안하는데, 딱 거절당했을 때는 당황스럽더라고요. 더 안타까운 건 그러고 나서 그 손님들도 가게를 다시 안 오십니다. 물론 놀러 왔는데 후원 제안을 하면 손님 입장에선 불편하겠죠. 그래서 친하다고 생각한 손님들에게 제안하는 건데...
은석: 사업하시면서 후원을 직접적으로 제안하시는 분은 천정남님 밖에 못 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에게 프렌즈는 활동가들이 많이 찾아오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사랑방이란 느낌이 있어요.
처음 오픈하실 땐 친구사이 대표 임기가 끝난 후였잖아요. 그때 구상했던 프렌즈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천정남: 저는 어쨌거나 활동을 했던 사람이고, 계속 인권운동에 관심이 있고, 결국 지금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게이 바 운영을 '이 또한 인권운동의 일환'으로 여겼죠. 여기서 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니까 이 사람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인권운동에 대한 생각들, 비전들, 고민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고, 그러면서 사람들의 얘기를 참고해가며 활동에 반영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지금도 그렇지만- 초창기에는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었기 때문에 제가 그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친구처럼. 그래서 가게 이름을 프렌즈라고 지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프렌즈는 다른 가게들이랑 차이점이 있어요. 예를 들면, 포스터 하나를 붙이더라도 인권운동에 관련된 포스터만 가게에 붙입니다. 그저 상업적인 건 안 붙입니다. 애초에 만들었던 목적이 인권운동을 위해서였으니까. 지금도 거기서 크게 벗어날 마음은 없고요.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프렌즈라는 곳이, 자신이 놀러만 가도 인권운동에 일정 정도 기여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었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손님들이 우리 가게 와서 돈을 쓰면, 저는 돈을 벌고, 그걸 다시 인권운동에 일정 정도 좋게 쓰고 있습니다.
은석: 제가 알기로는 프렌즈가 원래는 소주방이었고, 1층에 오픈된 인테리어를 한 종로3가 최초의 게이업소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들 숨기는 데 급급했을 때, 어떻게 이런 인테리어를 실행할 수 있었나요?
천정남: 처음부터 종로3가에 없던 콘셉트였죠. 지금 종로3가에 흔한 형식의 소주방도 프렌즈가 처음이었습니다. 예전엔 식당 같은 느낌의 소주방들만 있었는데, 지금 20대들이 많이 가는 모던한 느낌의 소주방은 프렌즈가 처음이었어요.
물론 게이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게이들만의 공간으로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우리 인권운동을 퍼뜨리려면 우릴 지지하는 앨라이(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지지하는 비성소수자)도 많아져야 하는 거고, 그들과도 같이 어울려야 하는 건데, 그러자면 공간적으로도 괜찮아야 하니까요. 지금도 많은 게이업소들에 여성은 출입할 수 없지만, 프렌즈는 처음부터 모든 손님들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처음부터 1층에 자리 잡고 당당히 무지개 깃발을 걸고 영업했습니다.
은석: 이런 콘셉트의 게이 바가 지금은 종로3가에 많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불편해하는 손님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천정남: 당연히 불편하다는 손님들 많았고 무지개 깃발 떼라는 손님들도 많았죠. 그럼 저는 그냥 "아무도 몰라요~ 아는 사람들만 알아요~" 그랬고요. 그런데 어느 날 출근했는데 여러 개 달렸던 무지개 깃발이 없어진 적이 있었어요. 물증은 없었지만 그냥 불편했던 누군가가 떼버렸거니,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으니, 다른 게이 바들도 다 무지개 깃발 달았으면 좋겠어요.
은석: #프렌즈는갤러리다 해시태그를 요즘 밀고 계십니다. 프렌즈가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나요?
천정남: 프렌즈가 미래에 대한민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사에서 중요한 공간이었다는 평을 받을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저 생겨났다 없어지는 그런 게이 바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한국의 게이 바라고 하면 바로 프렌즈! 가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도 활동·후원들을 해나가고 있고요.
또, 프렌즈가 오래된 가게이긴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도 이 자리에 프렌즈란 이름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늘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하고요. 프렌즈라는 공간은 그대로 유지하되, 너무 정체되어 있으면 안 되니까 소프트웨어를 계속 변화시키고 있어요. 그래서 올해부턴 성소수자 창작자들의 전시를 계속 해나갈 계획입니다.
은석: 프렌즈를 만드셨을 당시의 소망대로, 천정남님은 손님들에게 상담도 많이 해주시는데요. 예전에 천정남님께서 "게이커플은 짧게 연애한다? 그거 편견이야"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본인도 인생의 파트너를 만나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시고요. 이러한 편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천정남: 요새는 이성애자들도 다 짧게 연애하잖아요. 그런데 게이들은 비교 대상을 결혼한 이성애자 커플로 삼으니까 자신들의 연애가 짧게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반(비성소수자) 부부들은 눈에 흔하게 보이니까요. 사실 이성애자들도 결혼 전의 연애기간은 굉장히 짧죠. 제 조카들만 봐도 그래요. 연애 기간의 길고 짧음이 좋고 나쁨의 문제도 아닙니다. 본인들이 길게 연애하고 싶으면 사실 노력이 필요한 일이에요. 연애하면서 늘 좋을 순 없죠. 좋은 순간 싫은 순간 헤어지고 싶은 순간 다 겪어나가면서 길게 연애하는 거죠.
친구사이엔 저희 커플 말고도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커플들이 많아요. 10년이 넘은 커플들도 여럿 있고, 7~8년 된 커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친구사이에선 다른 커플들을 보며 배우는 게 있고 같이 고민을 얘기할 수도 있으니 관계를 잘 유지해나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단체에 속하지 않았으니까, 우리처럼 오래 사귀는 게이 커플을 보기가 힘들어서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많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은석: 친구사이 커밍아웃 인터뷰 1호 인터뷰이세요. 그때 "게이실버타운"의 원대한 꿈을 말씀하셨는데, 지금도 그러한 꿈을 꾸고 계신가요?
천정남: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버타운이라고 이름 붙인 건, 한 지역에 모여 살자, 이런 뜻이었어요. 건물 하나에 같이 사는 게 아니라. 노후에 대한 불안이 이유는 아니었고, 어쨌거나 다들 여성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가정"을 이루는 삶을 살진 않을 테니까, 나중에 파트너가 있건 없건 간에 우리끼리 모여서 즐겁게 살자! 이런 취지였습니다. 우린 늙어서도 되게 재밌게 살 거 같아요.
은석: 실례일 수도 있는 질문인데요, 천정남님께서 생각하시는 본인의 노년의 삶은 어떠해야 한다고 계획하신 게 있나요? 실버타운 말고?
천정남: 농담반 진담반 사람들에게 "나는 100살까지 살 거야!"라고 말해요. 나중에 나이가 8~90이 되어서도 퀴어퍼레이드에서 신나게 춤추면서 살고 싶습니다. 어쨌거나 1세대 활동가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고, 아니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이왕이면 좋은 롤모델이 되며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지요.
우리가 20대 때엔 4~50대 게이들의 삶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20대 게이들은 우리를 볼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노년이 됐을 때에도 그때의 2~30대 게이들이 '저 나이에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본보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인권운동에 몸으로 못 뛰더라도 후원이라도 열심히 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고요.
은석: 올해부터 활동가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한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지요.
천정남: 원래는 연말에 활동가들을 위한 파티를 할까 생각했는데, 그거 보다는 그냥 돈으로 후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기획을 변경했고요. 이건 프렌즈와는 상관없이 제가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애초에는 1년에 100만원씩 활동가들을 위한 기금으로 내놓으려고 했는데, 몇몇 지인들에게 얘기했더니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혀서 금액을 좀 더 키우려고 기획 중입니다. 1년에 300만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매년 12월에 전달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매년 금액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해에는 동참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 큰 금액을 기금으로 내놓을 수 있겠고, 동참하겠다는 사람들이 없으면 저 혼자 100만원을 내놓을 수도 있는 것이겠고요. 물론 제가 늘 사람들을 설득하러 다니긴 할 겁니다.
이 인터뷰 나간 뒤에 동참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네요.
은석: 마지막 질문입니다. 후원자로서, 퀴어문화축제 참여자로서 바라는 점이 있나요?
천정남: 퀴어문화축제가 규모가 점점 커지다보니 혐오세력도 가시화, 조직화가 되었습니다. 퀴어문화축제의 활동가들이 혐오세력에게 위축되거나 상처 받지 말고 더 당차게 해나갔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신경 쓰지 말고 멋지게 활동하시라!" 이 말을 전합니다.
인터뷰어 | 양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