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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제6호] PEOPLE 독거 레즈비언으로 살았을지도 몰라...(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참여기 by 파티이벤트 기획단 우야)

2015-05-01

2007년 6월부터 2014년 6월까지, 8년간 매년 빠지지 않고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 참가 했다. 2007년은 나에겐 참으로 퀴어한 해였다. 그 해에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독거 레즈비언의 삶을 고민하며 살았을 것 같다. 매년 퀴어퍼레이드는 감동적이지만, 작년에는 생각지도 못하게 1시간 정도 걸릴 퍼레이드가 5시간 동안 진행되어서 펑펑 울면서 신촌을 뛰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올 해 6월 퀴어 퍼레이드는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아마도 이 걱정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는 꼭 열릴 거고, 즐겁고 신나고 재밌을 것이기 때문에 걱정보다는 기대가 크다. 올해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를 기다리며 해마다 나는 어떻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 참여했었는지 돌아봤다. 


2007년 6월 2일.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그 해 4월에 레즈비언 라디오 방송을 제작하는 <레주파>에 들어갔고, 다 같이 퍼레이드에 참여했기 때문에 ‘7080 라디오DJ’를 컨셉으로 복장을 맞춰 입고 왔다. 그 때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껏 레즈비언 자긍심이 높아진 상태라 이런 복장을 하고 성남에서 종로까지 지하철을 타고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늘색 꽃무늬 셔츠에 빨간 마후라, 나팔 청바지에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축제에서 나눠준 사진촬영을 거부하는 표시인 빨간띠를 허리에 맸더니 샅바처럼 됐다. 이 차림으로 부스도 참여하고, 퍼레이드도 돌았다. 


처음으로 느끼는 해방감, ‘레즈비언’이라는 피켓을 들고 이렇게 이상한 복장을 하고 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고, 즐겁고 재밌고 여태까지 살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퍼레이드를 돌지 않겠다고. 


그 때부터 매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를 기다리게 됐다. 나에게 1년 중 가장 큰 기념일은 생일이 아니라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됐다. 그 하루를 위해, 어떤 컨셉으로, 어떤 복장을 입고 참여할 지를 364일 고민한다. 


그래서 2008년 ‘여고생’, 2009년 ‘도령/낭자’, 2010년 ‘캔디’, 2011년 ‘조폭’, 2012년 ‘신(神)’ 2013년 ‘해적/선원’, 2014년 ‘농부’... 참으로 다양한 컨셉으로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올해가 참 기대 된다. 


퀴어 퍼레이드를 참가하면서 큰 감동을 받고,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2009년부터는 퀴어문화축제 기획단 활동을 같이 하게 됐다. 그러면서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기획단들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지, 준비하기 까지 어떤 일들을 견뎌야 하는지 알게 됐다.



특히 그 해는 1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좀 더 의미가 있었다. 10년 동안 한 해도 쉬지 않고 축제가 열렸다는 것, 그리고 그 축제에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 그냥 모든 것들이 감동이었다. 그래서 십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더 이상 ‘십년감수’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십년감수>를 슬로건 아이디어로 냈는데, 채택 됐다. 하지만 그 해에는 정말 <십년감수>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더 이상 슬로건 아이디어는 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해에는 무대에 올라가서 사회를 봤다. 그런데 비가 왔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비옷을 입고 퍼레이드를 돌았다.



무대 위에서 본 사람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무지개 우산을 들고, 비가 오는 그 와중에서도 사람들은 밝게 웃었다. “비가 오니까 시원하죠? 비오니까 더 좋죠?”라는 말에 “네~~~!”라고 대답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사회를 보고 내려와서, 퍼레이드를 지원하기 위해서 분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었더니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자원 활동가 분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웃팅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하하하. 


2013년에는 갑작스럽게 트럭에 올라가게 됐다. 원래 왕자역할을 할 누군가가 있었는데 그 왕자가 트럭에 올라가지 못할 것 같아서 왕자 대타로 트럭에 올라가게 되었다. 대타로 올라가선 그런지, 분명 왕자 옷이었는데, 내가 입으니까 왕자의 시종이 되었다. 



맨날 트럭 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걷다, 뛰다만 하다가, 트럭에서 사람들이 걷고, 뛰어 오는 모습을 보니까 또 울컥 했다. 왜 이 많은 사람들은 이다지도 퍼레이드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 많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있을까. 


작년 퀴어 퍼레이드는 처음부터 참여하질 못했다. 파티팀의 기획단원으로 논알콜 파티를 진행 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티 장소에서 퍼레이드 소식을 트위터로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파티(오후 10시)가 끝날 때 까지 퍼레이드가 지연됐었기 때문에 파티 끝나고 나오니 트럭이 움직이고,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이 움직임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 하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복합적인 생각들이 들었다.


올해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어디서 열릴지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열릴 것이라는 걸 알기에 걱정되는 마음보다는 기대되는 마음이 더 크다. 또 내 옆에서 함께 걸어줄 사람들이 나와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든든하다. 


누군가 그랬다. “퀴어 퍼레이드는 성소수자의 죽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에서부터 시작했고, 죽음의 퍼레이드였고, 생명의 퍼레이드였으며, 삶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퍼레이드”라고. 그렇기 때문에 퀴어명절이라고 하는 퀴어 퍼레이드는 매년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과 내가 이 세상에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퀴어 퍼레이드.

올 해는 처음으로 시청광장에서 공식적으로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이 열리고, 퀴어 퍼레이드 부스도 90여개가 넘는 대규모 행사가 될 것 같다. 이런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벅차고, 행복하다.



그럼 6월, 퀴어퍼레이드에서 만나요. 다이어트는 5월부터. 


퀴어퍼레이드 참여를 위한 깨알 꿀Tip 

퍼레이드는 복장도 중요하지만, 피켓도 굉장히 중요하다.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피켓을 든 사진이 찍히기 때문이다. 장인정신을 갖고 만들어야 좋은 피켓이 나온다. 그래서 퍼레이드 며칠 전부터 피켓을 제작하면 좋다. 보통은 누구네 집에 모여서 만들면 좋은데 그렇지 못할 경우는 혼자 집에서 한 땀 한 땀 제작해 보는 것도 좋다. 


준비물>> 색종이, 색지, 칼, 가위, 풀, 테이프, 하드보드지, 박스, 보드마카, 크레파스 등 피켓을 꾸미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 

만드는 과정>>

1. 머릿속에 생각한다. (피켓 모양이나 문구 같은 것들)

2. 종이에 그려본다. 

3. 하드보드지나 박스에 디자인 초안을 연필로 그린다. 

4. 연필선을 보드마카로 따라 그린다. 

5. 다양한 것들로 꾸민다. 



글&사진 : 파티이벤트 기획단 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