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읽기: https://omn.kr/1u4cd
[편집자말] 2021 제22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기간 중에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소수자, 인권, 평등에 대한 감각, 차별, 대항표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칩니다. 불빛을 따라 자신만의 노트를 써가고 있는 문화·예술인 6인의 글을 릴레이 기고 "불빛과 노트들"을 통해 소개합니다. |
2020년 5월, 나는 이태원 '호모들의 언덕'에 있었다. 이후 이태원 클럽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소수자 혐오는 빠르게 확산되었다. 나는 공동체와 관련하여 수많은 일을 보고 겪은 '오래된 게이'임에도 쉽게 공황 상태에 빠졌다. 나는 '그런 곳'에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생애주기를 훌쩍 지난 나이에 여전히 밤 나들이를 다니는 '늙고 추한 게이'로 조롱받는 장면을 떠올리며 내 동선이 공개되는 상황을 상상했다.
이후 어떤 이가 슈퍼 전파자로 형상화돼 강력한 사회적 처벌을 받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와 나를 즉각적으로 동일시했다. 너무나도 쉽게 그가 될 수 있었던 나는 그저 우연에 의해 그가 되지 않았기에, 그가 느낄 수치심, 죄책감, 자기혐오에 즉각적으로 동일시했다. 또 게이 커뮤니티의 일부 성원들이 다른 이들을 낙인 찍는 모습을 보면서 고통을 느끼기도 했다.
▲ 책 "애도와 투쟁"
ⓒ 현실문화
나는 위 사건 이후 어둡고 축축한 감정에 휩싸여, 그리고 그 이후 있었던 여러 퀴어들의 죽음을 보며 슬픔 속에서, 이전부터 붙잡고 있던 책의 번역 작업을 마무리했다. 올 봄에 출간된 그 책은 미술평론가이자 HIV/에이즈 활동가인 더글러스 크림프가 쓴 <애도와 투쟁: 에이즈와 퀴어 정치학에 관한 에세이들>이다.
나는 극도의 불확실성과 곤궁 속에서도 돌봄과 친밀감의 체계를 건설하고자 애쓰는 이들, 또 자신의 쾌락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경험해야 하는 모든 퀴어들을 생각하며 이 책을 번역했다. 내가 그들을 위해,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이 책을 번역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일이 민망하긴 하지만 이 또한 내가 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두툼한 분량 때문에, 또는 오래전 미국에서 벌어진 일 속으로 갑작스럽게 들어가야 하는 독서 경험이 야기하는 저항감 때문에,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은 아닐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문란(promiscuity)'과 '우울(melancholia)'이라는 두 단어로 간추려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리의 문란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에이즈가 발견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인 1981년 여름이다. 하지만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85년에 이르러서야 '에이즈'라는 단어를 공식석상에서, 그것도 지나가는 식으로 처음 언급했다.
지금 상황으로 바꿔보자면, 국가는 감염병 위기에 어떤 개입도 하지 않다가 대통령이 2024년에 이르러서야 '코로나'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한 것이다. 당시 국가와 사회는 죽어가는 이들이 게이들이라는 이유로 에이즈 위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어떤 공적 역할과 책임도 하지 않았다.
또 게이들이 대규모로 죽어가는 상황을 '문란'에 대해 치러야 할 당연한 대가라고 보며 위기를 개인과 특정 공동체의 책임으로 돌렸다. 낙인과 혐오는 극대화되었고, 게이들의 죽음은 경축되었다. 이를 테면 "좋은 게이는 죽은 게이들뿐이다" 같은 말로.
공동체의 목숨을 구하는 방법을 최초로 발명해낸 이들은 퀴어 공동체였다. 그들은 쾌락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세이프섹스'라는 삶의 구명대를 발명했다. 그들은 국가와 종교와 언론과 학교가 세이프섹스의 교육을 방해하고 금지할 때, 자신들이 실험하고 확장해 온 친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었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끊임없이 특정한 관계들에게 떠넘겨지고 개인화되는 돌봄을 '공적인 것'으로 사유하고, 또 상호 돌봄을 접촉과 연결성의 네트워크를 통해 '문란하게' 실천함으로써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한 이들은 트라우마의 한가운데 있던 퀴어 공동체였던 것이다.
크림프는 퀴어들이 쾌락과 친밀성과 돌봄의 문제를 '나'와 가까운 거리의 이들을 특권화하는 방식으로 이자 관계적으로 보지 않았기에, 허구적으로 상상된 가짜 공동체의 안녕이 아니라 진짜 공동체의 진정한 안녕을 묻는 보편적 돌봄의 방식을 발명할 수 있었다고 본다. 크림프는 '문란'의 기존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전도시켰다. "우리의 문란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퀴어 멜랑콜리아
내게는 사랑하는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친구와의 관계를 묻는 그의 가족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알고 지내던 한 젠더퀴어의 장례식(그것도 그의 가족이 치르지 않으려던 것을 그의 친구들이 설득하여 가까스로 치러진 장례식)에서는 가족이 영정 사진 놓기를 거부해 그와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던 경험도 있다.
애도를 온전히 완료하지 못하는 경험. 많은 퀴어는 이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올해만 해도 우리는 이은용 작가, 김기홍 활동가, 변희수 하사를 비롯한 여러 퀴어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한 애도를 완료할 수 있었는가? 이 사회가 퀴어의 애도를 일상적으로 방해하는 한, 또 먼저 떠난 이들이 맞서고자 했던 혐오와 차별과 불평등이 지속되는 한, 위기를 사는 퀴어가 상실을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방법은 애초에 없다.
크림프는 책 전체에서 퀴어 상실의 애도불가능성과 그것에 기인한 우울이 어떤 효과들을 만들어내는지 섬세하게 살핀다. 어떤 이들은 상실을 애도하지 못한 채 오히려 자신을 거부하는 동성애혐오적인 사회와 동일시한다. 어떤 이들은 이 위로 받을 수 없는 애도불가능성 속에서 슬픔을 분노로 바꿔 투쟁으로 일어선다.
투쟁으로 나아간 이들 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가공할만한 수준의 상실에 압도된다. 그리곤 그 고통으로부터 방어하고자 공동체가 겪는 엄청난 상실의 규모를 부인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크림프는 슬픔, 절망, 분노, 공포, 수치심, 죄책감과 같은 퀴어 공동체 내부의 정동들을 상실에 대한 반응으로 살핌으로써, 어떻게 급진적이고 활력 넘쳤던 미국 에이즈 운동이 1990년대 중후반 활력을 잃고 보수화됐는지를 규명한다.
크림프는 여기에 중요한 통찰을 더한다. 그는 퀴어들은 사랑했던 친구들의 상실을 애도할 수 없지만, 퀴어한 세계들의 상실도 애도할 수 없다고 쓴다. 퀴어들은 자신의 삶을 비로소 사회적 의미를 지닐 수 있도록 해 주는 세계를 부인과 혐오에 의해 끊임없이 상실하는 이들이다.
자신의 세계가 곧 범죄의 장면으로 여겨지는 이들이 그 세계의 상실에 대한 애도를 어떻게 완료할 수 있겠는가. 이 애도불가능성으로 인해 퀴어들은 자신의 쾌락과 그 상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 갈등을 경험한다. 크림프는 이 상실과 갈등의 의미를 존중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투쟁의 잠재성을 부식시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크림프는 우울이 위에서 살펴본 도덕주의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덕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산하기도 한다고 본다. 우리가 잃어버린 친구들과 잃어버린 세계들을 애도하고 떠나 보내지 못할 때, 우리는 우울에 빠져 그들의 기억에 매달려 있게 된다.
크림프는 퀴어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프로이트의 '정상적 애도 vs. 병리적 우울' 서사를 비판적으로 재독해한 후, 우리는 상실한 것들을 간단히 애도하고 놓아 보내지 않고 끝까지 기억할 때 바로 그 우울 속에서 현재 이곳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교감하며 그들을 향해 진정한 책임감, 즉 '퀴어한 책임감'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작년 주디스 버틀러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위대한 미술평론가 더글러스 크림프가 우리의 애도를 급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고찰한 바 있습니다"라고 말했듯이, 크림프는 퀴어한 애도와 우울이 지닌 정치적 가능성에 가장 먼저 주목한 이론가이자 활동가 중 한 명이었다.
문란한 돌봄, 퀴어한 책임감
이태원의 트라우마 속에서 침잠해 있을 때, 평소 나와 연락을 거의 주고받지 않던 게이 지인 한 명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그는 내 안녕을 묻고, 자신의 검사 경험을 공유하며 나를 위안했다. 그 문자를 받고 나 역시 용기를 내어 거의 연락하지 않던 친구들에게 안녕을 묻는 이메일을 썼다. 그리고는 검사를 받으러 이른 아침 보건소로 걸어갔다. 그때는 퀴어 활동가들의 제안으로 보건당국이 익명 검사을 도입한 다음이었다. 사람들이 검사를 기피하던 그 이전과 달리 많은 이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퀴어 활동가들은 그간의 투쟁 경험을 토대로 익명 검사를 제안하고, 혐오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림으로써, 공중방역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또 언론과 퀴어 공동체를 상대로 용감하고 윤리적인 대처를 했다('K-방역'의 공식 서사는 이 기여를 정당하게 인정하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성원들 역시 부당하고 부정의한 혐오와 낙인 속에서도 방역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서로의 안녕을 묻고 살폈다.
지금 많은 퀴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어려움 속에서도 힘을 모으고 있다. 목숨만 부지하고 최소한의 삶만 살아도 그것은 삶일 것이다. 하지만 이 퀴어들은 그 누구도 그렇게 살게 두어서는 안 되며, 모두가 삶으로 충만한 삶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으며 차별이 없는 세계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친구들에 대한 기억 속에서, 또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들에 대한 기억 속에서, 모두를 위한 '문란'한 돌봄의 체계를 세우고, '퀴어한 책임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기혐오 속에서 공동체 뒤켠의 어두운 회랑에 숨어버린 게이지만, 친구들과 동료들이 자신의 퀴어한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며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차별 없는 세계를 만드는 노력에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한다.
어느 저녁 우연히 아무렇게나 펼쳐 읽게 된 <애도와 투쟁>의 몇 문단, 또는 몇 쪽이 어떤 이들의 위로받을 수 없는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기를, 그리고 용기와 힘을 더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애도와 투쟁.
덧붙이는 글 | 김수연 : 퀴어의 번역과 번역의 퀴어링에 관심이 많다. 수년간 평일에는 글을 옮기고 주말에는 이태원과 종로에서 대안적 친밀감의 세계를 배회하는 삶을 살고 있다. 더글러스 크림프의 <애도와 투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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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말]
2021 제22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기간 중에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소수자, 인권, 평등에 대한 감각, 차별, 대항표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칩니다. 불빛을 따라 자신만의 노트를 써가고 있는 문화·예술인 6인의 글을 릴레이 기고 "불빛과 노트들"을 통해 소개합니다.
2020년 5월, 나는 이태원 '호모들의 언덕'에 있었다. 이후 이태원 클럽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소수자 혐오는 빠르게 확산되었다. 나는 공동체와 관련하여 수많은 일을 보고 겪은 '오래된 게이'임에도 쉽게 공황 상태에 빠졌다. 나는 '그런 곳'에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생애주기를 훌쩍 지난 나이에 여전히 밤 나들이를 다니는 '늙고 추한 게이'로 조롱받는 장면을 떠올리며 내 동선이 공개되는 상황을 상상했다.
이후 어떤 이가 슈퍼 전파자로 형상화돼 강력한 사회적 처벌을 받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와 나를 즉각적으로 동일시했다. 너무나도 쉽게 그가 될 수 있었던 나는 그저 우연에 의해 그가 되지 않았기에, 그가 느낄 수치심, 죄책감, 자기혐오에 즉각적으로 동일시했다. 또 게이 커뮤니티의 일부 성원들이 다른 이들을 낙인 찍는 모습을 보면서 고통을 느끼기도 했다.
▲ 책 "애도와 투쟁"
ⓒ 현실문화
나는 위 사건 이후 어둡고 축축한 감정에 휩싸여, 그리고 그 이후 있었던 여러 퀴어들의 죽음을 보며 슬픔 속에서, 이전부터 붙잡고 있던 책의 번역 작업을 마무리했다. 올 봄에 출간된 그 책은 미술평론가이자 HIV/에이즈 활동가인 더글러스 크림프가 쓴 <애도와 투쟁: 에이즈와 퀴어 정치학에 관한 에세이들>이다.
나는 극도의 불확실성과 곤궁 속에서도 돌봄과 친밀감의 체계를 건설하고자 애쓰는 이들, 또 자신의 쾌락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경험해야 하는 모든 퀴어들을 생각하며 이 책을 번역했다. 내가 그들을 위해,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이 책을 번역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일이 민망하긴 하지만 이 또한 내가 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두툼한 분량 때문에, 또는 오래전 미국에서 벌어진 일 속으로 갑작스럽게 들어가야 하는 독서 경험이 야기하는 저항감 때문에,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은 아닐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문란(promiscuity)'과 '우울(melancholia)'이라는 두 단어로 간추려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리의 문란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에이즈가 발견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인 1981년 여름이다. 하지만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85년에 이르러서야 '에이즈'라는 단어를 공식석상에서, 그것도 지나가는 식으로 처음 언급했다.
지금 상황으로 바꿔보자면, 국가는 감염병 위기에 어떤 개입도 하지 않다가 대통령이 2024년에 이르러서야 '코로나'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한 것이다. 당시 국가와 사회는 죽어가는 이들이 게이들이라는 이유로 에이즈 위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어떤 공적 역할과 책임도 하지 않았다.
또 게이들이 대규모로 죽어가는 상황을 '문란'에 대해 치러야 할 당연한 대가라고 보며 위기를 개인과 특정 공동체의 책임으로 돌렸다. 낙인과 혐오는 극대화되었고, 게이들의 죽음은 경축되었다. 이를 테면 "좋은 게이는 죽은 게이들뿐이다" 같은 말로.
공동체의 목숨을 구하는 방법을 최초로 발명해낸 이들은 퀴어 공동체였다. 그들은 쾌락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세이프섹스'라는 삶의 구명대를 발명했다. 그들은 국가와 종교와 언론과 학교가 세이프섹스의 교육을 방해하고 금지할 때, 자신들이 실험하고 확장해 온 친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었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끊임없이 특정한 관계들에게 떠넘겨지고 개인화되는 돌봄을 '공적인 것'으로 사유하고, 또 상호 돌봄을 접촉과 연결성의 네트워크를 통해 '문란하게' 실천함으로써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한 이들은 트라우마의 한가운데 있던 퀴어 공동체였던 것이다.
크림프는 퀴어들이 쾌락과 친밀성과 돌봄의 문제를 '나'와 가까운 거리의 이들을 특권화하는 방식으로 이자 관계적으로 보지 않았기에, 허구적으로 상상된 가짜 공동체의 안녕이 아니라 진짜 공동체의 진정한 안녕을 묻는 보편적 돌봄의 방식을 발명할 수 있었다고 본다. 크림프는 '문란'의 기존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전도시켰다. "우리의 문란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퀴어 멜랑콜리아
내게는 사랑하는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친구와의 관계를 묻는 그의 가족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알고 지내던 한 젠더퀴어의 장례식(그것도 그의 가족이 치르지 않으려던 것을 그의 친구들이 설득하여 가까스로 치러진 장례식)에서는 가족이 영정 사진 놓기를 거부해 그와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던 경험도 있다.
애도를 온전히 완료하지 못하는 경험. 많은 퀴어는 이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올해만 해도 우리는 이은용 작가, 김기홍 활동가, 변희수 하사를 비롯한 여러 퀴어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한 애도를 완료할 수 있었는가? 이 사회가 퀴어의 애도를 일상적으로 방해하는 한, 또 먼저 떠난 이들이 맞서고자 했던 혐오와 차별과 불평등이 지속되는 한, 위기를 사는 퀴어가 상실을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방법은 애초에 없다.
크림프는 책 전체에서 퀴어 상실의 애도불가능성과 그것에 기인한 우울이 어떤 효과들을 만들어내는지 섬세하게 살핀다. 어떤 이들은 상실을 애도하지 못한 채 오히려 자신을 거부하는 동성애혐오적인 사회와 동일시한다. 어떤 이들은 이 위로 받을 수 없는 애도불가능성 속에서 슬픔을 분노로 바꿔 투쟁으로 일어선다.
투쟁으로 나아간 이들 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가공할만한 수준의 상실에 압도된다. 그리곤 그 고통으로부터 방어하고자 공동체가 겪는 엄청난 상실의 규모를 부인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크림프는 슬픔, 절망, 분노, 공포, 수치심, 죄책감과 같은 퀴어 공동체 내부의 정동들을 상실에 대한 반응으로 살핌으로써, 어떻게 급진적이고 활력 넘쳤던 미국 에이즈 운동이 1990년대 중후반 활력을 잃고 보수화됐는지를 규명한다.
크림프는 여기에 중요한 통찰을 더한다. 그는 퀴어들은 사랑했던 친구들의 상실을 애도할 수 없지만, 퀴어한 세계들의 상실도 애도할 수 없다고 쓴다. 퀴어들은 자신의 삶을 비로소 사회적 의미를 지닐 수 있도록 해 주는 세계를 부인과 혐오에 의해 끊임없이 상실하는 이들이다.
자신의 세계가 곧 범죄의 장면으로 여겨지는 이들이 그 세계의 상실에 대한 애도를 어떻게 완료할 수 있겠는가. 이 애도불가능성으로 인해 퀴어들은 자신의 쾌락과 그 상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 갈등을 경험한다. 크림프는 이 상실과 갈등의 의미를 존중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투쟁의 잠재성을 부식시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크림프는 우울이 위에서 살펴본 도덕주의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덕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산하기도 한다고 본다. 우리가 잃어버린 친구들과 잃어버린 세계들을 애도하고 떠나 보내지 못할 때, 우리는 우울에 빠져 그들의 기억에 매달려 있게 된다.
크림프는 퀴어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프로이트의 '정상적 애도 vs. 병리적 우울' 서사를 비판적으로 재독해한 후, 우리는 상실한 것들을 간단히 애도하고 놓아 보내지 않고 끝까지 기억할 때 바로 그 우울 속에서 현재 이곳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교감하며 그들을 향해 진정한 책임감, 즉 '퀴어한 책임감'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작년 주디스 버틀러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위대한 미술평론가 더글러스 크림프가 우리의 애도를 급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고찰한 바 있습니다"라고 말했듯이, 크림프는 퀴어한 애도와 우울이 지닌 정치적 가능성에 가장 먼저 주목한 이론가이자 활동가 중 한 명이었다.
문란한 돌봄, 퀴어한 책임감
이태원의 트라우마 속에서 침잠해 있을 때, 평소 나와 연락을 거의 주고받지 않던 게이 지인 한 명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그는 내 안녕을 묻고, 자신의 검사 경험을 공유하며 나를 위안했다. 그 문자를 받고 나 역시 용기를 내어 거의 연락하지 않던 친구들에게 안녕을 묻는 이메일을 썼다. 그리고는 검사를 받으러 이른 아침 보건소로 걸어갔다. 그때는 퀴어 활동가들의 제안으로 보건당국이 익명 검사을 도입한 다음이었다. 사람들이 검사를 기피하던 그 이전과 달리 많은 이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퀴어 활동가들은 그간의 투쟁 경험을 토대로 익명 검사를 제안하고, 혐오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림으로써, 공중방역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또 언론과 퀴어 공동체를 상대로 용감하고 윤리적인 대처를 했다('K-방역'의 공식 서사는 이 기여를 정당하게 인정하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성원들 역시 부당하고 부정의한 혐오와 낙인 속에서도 방역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서로의 안녕을 묻고 살폈다.
지금 많은 퀴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어려움 속에서도 힘을 모으고 있다. 목숨만 부지하고 최소한의 삶만 살아도 그것은 삶일 것이다. 하지만 이 퀴어들은 그 누구도 그렇게 살게 두어서는 안 되며, 모두가 삶으로 충만한 삶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으며 차별이 없는 세계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친구들에 대한 기억 속에서, 또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들에 대한 기억 속에서, 모두를 위한 '문란'한 돌봄의 체계를 세우고, '퀴어한 책임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기혐오 속에서 공동체 뒤켠의 어두운 회랑에 숨어버린 게이지만, 친구들과 동료들이 자신의 퀴어한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며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차별 없는 세계를 만드는 노력에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한다.
어느 저녁 우연히 아무렇게나 펼쳐 읽게 된 <애도와 투쟁>의 몇 문단, 또는 몇 쪽이 어떤 이들의 위로받을 수 없는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기를, 그리고 용기와 힘을 더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애도와 투쟁.
덧붙이는 글 | 김수연 : 퀴어의 번역과 번역의 퀴어링에 관심이 많다. 수년간 평일에는 글을 옮기고 주말에는 이태원과 종로에서 대안적 친밀감의 세계를 배회하는 삶을 살고 있다. 더글러스 크림프의 <애도와 투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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