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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제9호_Queer Webtoon Fan] 인터뷰: ‘여섯 색깔 퀴어 부채’ 참여작가 다드래기님

2016-05-31


Q1 _ 레진코믹스에서 웹툰 <거울아 거울아>를 연재 중이시고, 개인적으로는 어딘가에 사는 누구의 실제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사실적인 이야기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작품을 기획하게 되셨나요?

거울아 거울아는 3부까지 해서 완결되었습니다.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를 가장 많이 질문으로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로맨스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사실 사람들이 로맨스를 좋아 하는 건 원하는 만큼 낭만적인 로맨스가 현실에 힘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하면서 엉뚱하게 제 처지(?)나 주변에 더 마음이 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남녀노소 누구나 똑같아질 수 있는 그 순간조차 어려운, 스스로를 사랑하기 어려워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졌고 주변에 있는 퀴어 친구들이 가끔 해주던 자신들의 수기가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수기를 떠올려 이야기하는 만큼 주변인으로, 그리고 이성애자로 현재 이런 상황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일이 매우 필요한 것이라고 느꼈어요. 페미니스트인 남성들이나 부의 재분배를 이야기하는 부자들처럼 이것은 상·하의 개념이 아니라 다수가 소수를 이야기하는 자세로서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데뷔하고 겨우 한 작품 진행을 했었고 무거운 스토리 텔링을 하기에 경험이 너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런 것으로 이야기나 실력의 경중을 굳이 따져 만들고 싶지는 않았고 내가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 내 세계관과 철학을 이야기한다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그래서 재미는 많이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진실한 작업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로맨스든 인생이든 살아있는 한 모두 열린 결말이지만 걸어가는 방향이 행복하고 즐겁고 기대되는 결말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렸어요. 그리고 저는 전부 좋은 결말이라고 절대로 생각합니다. (강조합니다!)


Q2 _ 매화 마무리마다 인터뷰어와 도와주신 분들이 적혀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작품을 만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1부를 시작할 때는 이미 주변인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이미 게이 친구가 있다는 게 오히려 막연하게 준비하시는 다른 분들보다는 더 쉽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소수 속에서도 '다수'에 속하는 '동성애자'인 친구는 오히려 더 찾기가 쉬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내 감수성으로 상상해서 마음대로 만들 수가 없다.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고 몇몇 분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흔쾌히 도와주셨습니다. 실제로 친한 오빠, 독자님으로부터 먼저 도움을 받고 1부를 진행하면서 직접 연락해주신 다른 독자님들을 통해 오히려 뒤로 갈수록 찾지 않아도 직접 도와주시겠다고 연락해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익명으로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연락이 자주 오가는 분도 있고 끊어진 분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제가 생각해 놓은 캐릭터(오장수, 정시안, 장주원 등)의 성격과 인터뷰를 통해 얻은 성장환경, 경험, 고통과정 등을 대입시켜서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학습만화가 아니다 보니 작품에는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HIV 감염인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 때는 책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사소하고 필요 없을지 모르는 디테일 때문인데 그런 게 작품의 진정성과 연결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관련 기관 인터뷰가 많이 힘들어서(메르스, 개인정보 문제 등) 동동 구르다가 미국에 계신 해외활동가분으로 부터 사회적인 정보를 얻었고 관련 수기집을 들이 파던 중 너무 감사하게도 한 분 연결이 되어 또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HIV 감염인인 장주원의 에피소드가 상당히 힘들고 힘든 만큼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 같고 미련도 많이 남지만, 이 생각의 물꼬를 스스로 트게 되었다는 데서 '마음이 제일 걸리면서 매우 아끼는' 자식같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성애자가 퀴어작품을 만들 때 뭔가 상위의 개체가 하위의 것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리는 실수를 쉽게 하거나 혹은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두 가지가 극렬하므로 자기검열도 심하게 하고 몇몇 인터뷰 중에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기에 심적으로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인터뷰하면 절반은 자신감에 차있고 절반은 절망감에서 계속 외로워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극단적인 감정을 한꺼번에 모아 생각하는 게 정말 어렵고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느낄 수 없었던, 겪을 수 없던 감정을 그 안에 들어가서 생각을 한다는 건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여러 극단적인 상황을 '극단적이기 때문에' 더 강하게 돌파했던 분들을 만나서 오히려 좀 더 찌질이 같던 제가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인생은 흘러가고 밝은 길은 어디에나 열려있다가 그리고 지금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마음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Q3 _ 퀴어문화축제에 와 보신 적이 있나요? 참가해보신 것이 있다면 언제였는지,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와 보신 적이 없다면 축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알려주세요.

상당히 고생이 많았던 2013년 서울축제 때 영화제 보러 처음 갔었고 2014년에는 대구축제를 갔습니다. 작년에는 메르스 여파로 공교롭게도 제가 만성질환자라 바깥출입을 자제하여 가질 못했습니다.

우선 퀴어문화축제는….

콘돔을 상당히 많이 받아서 정말 좋았습니다!! ㅎㅎㅎ

대구에서는 행사장 옆에서 기독교단체들이 스피커를 틀어놓고 기도회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판매하던 레인보우 수건을 목에 걸고 지나가다가 앉아계시던 할아버지한테 욕을 엄청 들었어요.

예전에 어버이연합 할아버지에게 침을 맞아본 적 있는데 그때만큼 기분이 상했죠. 언쟁을 안 하려고 상당히 기분이 쭈뼛한 상태로 있었어요(그래도 티셔츠랑 살 거 다 샀던…. 변천님 포스터도 얻어가고요)

걸어 다니면서 생각을 많이 하거나 궁금한 것은 다시 보고 또 보고 맴돌고 그런 성격이라 어딘가 다닐 때는 대부분 혼자 움직입니다.

그래서 첫 참여 때는 스스로 너무 진지충, 왕따 같은 모습으로 돌아다녀서 신나게 느껴보지 못했어요. 사실 어떤 집회나 시위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이때만큼 예민하거나 괜히 졸아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직접 무언가를 당한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 어떤 집회나 단식투쟁에 참여해도 그렇게 긴장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스스로 퀴어문화축제의 참가보다 그것이 더 사람들 눈에 보기에 '명분을 더 잘 만들어줬다.' 고 느낀 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축제의 의의와 소수자에 대한 인식개선에 대해 나 스스로 잘 알고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이에서 또 정당한 변명이나 명분을 찾고 앉아있는 것 같아서 혼자 부끄러운 느낌이었어요.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고 말하고 싶었고 그 하나의 표현이 퀴어문화축제의 즐거운 참가 또한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아직 눈으로 보고 깨닫고 생각하고 이런 것들이 저도 초보입니다. 그래서 작품도 말을 꺼내는 것도 그동안 많이 조심스러웠어요. 특히나 겉은 잘 나가지만 상당히 폐쇄적인 국가에서 이런 형식의 큰 행사는 '형식적인 것'이라는 비판이 있더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듭하면서 알은 채워져야 하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