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읽기: https://omn.kr/1u4ca
[편집자말] 2021 제22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기간 중에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소수자, 인권, 평등에 대한 감각, 차별, 대항표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칩니다. 불빛을 따라 자신만의 노트를 써가고 있는 문화·예술인 6인의 글을 릴레이 기고 "불빛과 노트들"을 통해 소개합니다. |
▲ 영화 <셔틀런>
ⓒ 필름다빈
몇 년 전, 네이버 인디극장에서 <셔틀런>을 보게 되었다. 주인공은 체육교사인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끝까지 달린다. 운동과 설렘, 둘 중 하나도 벅찬데 심장이 요동치는 이유가 두 가지나 되고, 심장은 두 배로 뛴다. 결국 주인공은 기절한다.
주인공은 어린이이고 퀴어다. 퀴어 퍼레이드 시기면 '애들 보기 부끄럽지 않냐!'면서 거리로 나와 축제에 동참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은 영화다. 왜 모든 어린이는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감히 생각하는 것일까?
동성애가 길러진다고?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이성애물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된 것 아닐까요? 아이고 그 드라마만 없었어도, 그 영화만 없었어도, 그 이성애 키스씬만 없었어도!
마스크 안 써도 되던 시절, 여성인권영화제에서 간호사에 관한 영화 <3교대>를 봤다. 무지막지한 업무,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으로 간호사들의 업무환경은 정말 열악하다. 단적인 예로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어 방광염에 걸리기도 한다.
빨리빨리, 게다가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긴장감은 매 순간 최고조다. 이 긴장감 속에서 선후배 간의 갈등과 강압적인 문화는 어쩌면 불가피하다. 시스템을 가리고 자극적인 '태움' 현상만 드러내는 미디어 때문에 간호사들은 열악한 환경 속 노동자가 아닌 여자들끼리 갈구는 '못된' 사람들로 오해받는다.
<3교대>는 시스템을 조명하고, 오해를 푼다. 주인공인 두 간호사는 환자의 폭언, 폭행과 사건이 벌어져도 쉬쉬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다. 혼자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연대로서 해결해나간다. 환자 때문에 다친 손에 스스로 붕대를 매던 주인공의 모습에서 눈물이 났다.
퀴어영화 찍으면 다 퀴어인가요?
<셔틀런>은 어린이이자 성소수자를 다루고, <3교대>는 여성이자 간호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셔틀런>은 이은경 감독의 영화이고, <3교대>는 이은경 감독과 실제 간호사인 정서윤 감독이 공동 연출을 했다.
같은 감독의 영화인지 모르고 다른 두 영화를 좋아하다가 그 두 영화가 같은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기쁨이 있다. 이은경 감독님이 그렇게 내 무릎을 탁 쳤다.
▲ 영화 <마더 인 로>
ⓒ 인디스토리
2014년, 영화인 동료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퀴어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퀴어영화는 절대 찍지 않을 거라고 그랬었다. 퀴어영화를 찍으면 사람들이 나를 퀴어라고 단정 지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런 말을 했었다는 사실을 새카맣게 잊고, 2019년 퀴어영화 <마더 인 로>를 만들었다. 그 동료가 나에게 물었다. "야 안 찍는다며?" 내가 대답했다. "그러게."
생각 짧은 질문은 항상 따라온다. <마더 인 로>를 찍자 역시 나보고 퀴어냐고 누가 물었다. 그럼 윤가은 감독님은 어린이예요? 로메로는 좀비냐고요? 월트 디즈니는 쥐야? 그때 쏴댔어야 했는데.
소수자, 약자를 다룬 작품을 찍는다는 것은 이런 무례한 질문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뚝심 있게 <셔틀런>, <머물던 자리> 두 편의 퀴어영화와, 간호사 인권을 다룬 <3교대>를 찍어온 이은경 감독님에게 힘을 받는다.
그리고 힘을 드리고 싶다. 이은경 감독님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퀴어영화를 찍는 모든 창작자에게 눈치 보지 말고 또 찍자고 응원을 건네고 싶다. 그리고 이은경 감독님에게 실례지만 부담스러운 질문 하나를 덧붙이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감독님, 그래서 다음 작품은 뭐예요? 천천히 대답해 주셔도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신승은 :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이다.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 원문 읽기: https://omn.kr/1u4ca
[편집자말]
2021 제22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기간 중에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소수자, 인권, 평등에 대한 감각, 차별, 대항표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칩니다. 불빛을 따라 자신만의 노트를 써가고 있는 문화·예술인 6인의 글을 릴레이 기고 "불빛과 노트들"을 통해 소개합니다.
▲ 영화 <셔틀런>
ⓒ 필름다빈
몇 년 전, 네이버 인디극장에서 <셔틀런>을 보게 되었다. 주인공은 체육교사인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끝까지 달린다. 운동과 설렘, 둘 중 하나도 벅찬데 심장이 요동치는 이유가 두 가지나 되고, 심장은 두 배로 뛴다. 결국 주인공은 기절한다.
주인공은 어린이이고 퀴어다. 퀴어 퍼레이드 시기면 '애들 보기 부끄럽지 않냐!'면서 거리로 나와 축제에 동참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은 영화다. 왜 모든 어린이는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감히 생각하는 것일까?
동성애가 길러진다고?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이성애물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된 것 아닐까요? 아이고 그 드라마만 없었어도, 그 영화만 없었어도, 그 이성애 키스씬만 없었어도!
마스크 안 써도 되던 시절, 여성인권영화제에서 간호사에 관한 영화 <3교대>를 봤다. 무지막지한 업무,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으로 간호사들의 업무환경은 정말 열악하다. 단적인 예로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어 방광염에 걸리기도 한다.
빨리빨리, 게다가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긴장감은 매 순간 최고조다. 이 긴장감 속에서 선후배 간의 갈등과 강압적인 문화는 어쩌면 불가피하다. 시스템을 가리고 자극적인 '태움' 현상만 드러내는 미디어 때문에 간호사들은 열악한 환경 속 노동자가 아닌 여자들끼리 갈구는 '못된' 사람들로 오해받는다.
<3교대>는 시스템을 조명하고, 오해를 푼다. 주인공인 두 간호사는 환자의 폭언, 폭행과 사건이 벌어져도 쉬쉬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다. 혼자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연대로서 해결해나간다. 환자 때문에 다친 손에 스스로 붕대를 매던 주인공의 모습에서 눈물이 났다.
퀴어영화 찍으면 다 퀴어인가요?
<셔틀런>은 어린이이자 성소수자를 다루고, <3교대>는 여성이자 간호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셔틀런>은 이은경 감독의 영화이고, <3교대>는 이은경 감독과 실제 간호사인 정서윤 감독이 공동 연출을 했다.
같은 감독의 영화인지 모르고 다른 두 영화를 좋아하다가 그 두 영화가 같은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기쁨이 있다. 이은경 감독님이 그렇게 내 무릎을 탁 쳤다.
▲ 영화 <마더 인 로>
ⓒ 인디스토리
2014년, 영화인 동료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퀴어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퀴어영화는 절대 찍지 않을 거라고 그랬었다. 퀴어영화를 찍으면 사람들이 나를 퀴어라고 단정 지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런 말을 했었다는 사실을 새카맣게 잊고, 2019년 퀴어영화 <마더 인 로>를 만들었다. 그 동료가 나에게 물었다. "야 안 찍는다며?" 내가 대답했다. "그러게."
생각 짧은 질문은 항상 따라온다. <마더 인 로>를 찍자 역시 나보고 퀴어냐고 누가 물었다. 그럼 윤가은 감독님은 어린이예요? 로메로는 좀비냐고요? 월트 디즈니는 쥐야? 그때 쏴댔어야 했는데.
소수자, 약자를 다룬 작품을 찍는다는 것은 이런 무례한 질문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뚝심 있게 <셔틀런>, <머물던 자리> 두 편의 퀴어영화와, 간호사 인권을 다룬 <3교대>를 찍어온 이은경 감독님에게 힘을 받는다.
그리고 힘을 드리고 싶다. 이은경 감독님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퀴어영화를 찍는 모든 창작자에게 눈치 보지 말고 또 찍자고 응원을 건네고 싶다. 그리고 이은경 감독님에게 실례지만 부담스러운 질문 하나를 덧붙이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감독님, 그래서 다음 작품은 뭐예요? 천천히 대답해 주셔도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신승은 :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이다.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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