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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제10호_Special] 퀴어문화축제 강명진 조직위원장을 만나다

2016-06-10

제17회 퀴어문화축제가 임박해올 수록 기획단은 정신없이 바빠집니다.

계획했던 것들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도록, 축제 당일이 안전할 수 있도록 기획단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만전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매일이 전쟁인 요즘, 그 폭풍의 중심에 서 있는 강명진 조직위원장을 만나보았습니다.



진선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강명진  저는 강명진입니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고, 게이이고, 우리 엄마 아들이고, 누군가에게는 친구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형이고, 동생인 한 사람의 개인입니다.


진선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자리를 몇 년 째 맡고 계신건가요?


강명진  올해로 일곱 번째네요. 기획은 2001년부터 했으니까 16년째 축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진선  정말 긴 세월을 함께 하셨네요. 처음 어떤 계기로 축제에 참여하게 되셨나요?


강명진  2001년 초에 시드니에 여행을 가서 마디그라 게이퍼레이드를 구경했었어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두 번째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있더라고요. 주변에서 시드니 게이퍼레이드를 보고 왔으니 축제 기획에 참가해보라고 권유했고, 그 해 전시 큐레이터로 참여했던 게 지금까지 왔네요.


진선  그럼 한국 퀴어문화축제에 개인적으로 참가해보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신 건가요?


강명진  네. 순수하게 축제를 즐겨본 적이 없어서 너무 안타깝고 슬퍼요. 축제에 오신 분들 보면 부럽습니다.


진선  3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 축제를 기획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그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버팀목이 있을 것 같아요. 축제의 어떤 점에 매료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강명진  문화행사의 매력에 빠진 것 같아요. 축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함께 어우러지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출하잖아요. 그게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잖아요. 특히나 스스로 성소수자라고 자각한 개인의 입장이라면 더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표현의 장을 만드는데 참여하고, 그 기회를 통해 누군가가 해방감, 행복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을 본다는 것이 크나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진선  자그마치 16년. 그동안 축제 꾸려 오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즐거웠던 순간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강명진  일단 매 해 너무 힘들어요. 현장에서의 마찰, 준비했던 대로 되지 않을 때의 부담감이 무척 커요. 퀴어문화축제를 만드는데 드는 시간이 대략 십 개월쯤 걸려요. 그 긴 시간동안에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거든요. 진행했던 일이 엎어지기도 하고,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고,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매해 항상 새로운 사건들로 시련을 겪었던 것 같아요.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꼽아보자면 2009년 축제를 코앞에 두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서거를 하셨어요. 모든 일정을 갑자기 조정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그래도 2014년 때만큼 난감하지는 않았어요. 신촌에서 퍼레이드를 하는데 갑자기 나타난 혐오세력으로 인해 행사가 4시간 정도 지연 됐었죠. 매 해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하면서 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필요로 하는 일이예요. 잠도 제대로 못자고, 제 때 못 먹는 생활이 반복되죠. 하지만 축제가 끝나면 거짓말처럼 그 피로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 매년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즐거웠다는 후기들도 넘쳐나고.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매년 뭉클할 정도로 저를 즐겁게 합니다.


진선  열 달이면 한 해의 대부분을 축제와 함께하고 계신 거잖아요. 축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기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는 어떻게 지내시는 지 궁금합니다. 특히 축제가 끝난 뒤에요.


강명진  행사를 마치면, 일단 자요. 부족한 잠을 자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그래야 저도 컨디션이 유지가 되니까요.


진선  겨울잠 같은 건가요?


강명진  하하,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작년 같은 경우에는 매일 잤어요. 이틀을 내리 자고, 깨서 밥 먹고 다시 자고, 깨서 밥 먹고 다시 자는 일상을 보내죠. 잠을 충분히 자고 난 뒤 몸이 좀 추슬러지고 나면, 놀러 다닌다거나 하면서 개인적으로 여유를 조금 부려보려고 애써요. 하지만 그게 또 얼마 안 돼요. 돌아서면 새 행사를 준비해야하거든요, 온전하게 개인적인, 축제와 무관한 시간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축제가 또 연대 사업을 진행하기 시작하면서, 축제기간이 아닌 때에도 각종 행사들을 기획하느라 바빠지기도 합니다.


진선  좀 더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퀴어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가요?


강명진  저는 퀴어로 사는 게 참 좋아요. 사회가 물론 변화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터부도 많이 남아 있고, 변화하는 속도가 나의 자존감을 채워줄 만큼은 아니죠. 내가 바라고, 내가 원하고, 내가 행복한, 소수자의 존재가 행복 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이상향과 같은 목적지가 있어요. 다양한 소수자들이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고, 어우러지는 사회, 우리 사회는 분명 그걸 위해 변화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게 때때로 참 행복해요. 소수자이자 게이인,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제 삶을 지탱해주는 꿈이 되는 것 같달 까요. 물론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를 감춰야하고, 숨어야 하고, 계속 억누르면서 영위되는 삶도 있죠. 그런 삶이 개인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행복할 수 있을까, 그건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어쨌거나 내가 나를 잘 받아들이고, 이 사회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그 자세를 정립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이야기하다보니 퀴어의 범주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인 것 같네요. 저는 퀴어지만, 퀴어라서 다르진 않다고 생각해요.


진선  ‘헬조선’, ‘떠나자’라는 말들을 특히 성소수자들이 많이 하잖아요. 우리나라는 멀었다, 글렀다 하면서요. ‘이 사회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라는 말씀이 몇몇 분들에게는 전환점이 되는 말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드네요.


강명진  물론 저도 이틀에 한 번씩은 ‘내가 이나라를 떠야하나’라며 한탄해요. 하지만 내 환경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내가 놓아버리면 사회는 변화하지 않거든요. 나를 위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없는 거죠. 이 사회가 너무 안 좋고, 나를 위한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내가 해야 할 것은 나를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길고 긴 싸움이 될 지라도, 저는 그런 세상을 위해 노력할 거예요. 그 방식이 축제가 됐든 다른 것이 됐든 앞으로도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진선  그럼 이 ‘헬조선’이라고도 불리는 대한민국에 ‘퀴어문화축제’가 꼭 필요한 이유를 꼽는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강명진  축제를 생각하는 ‘우리’의 수만큼의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사회에 존재가 드러나지 않으면 존재를 위한 사회는 만들어지지 않아요. 어떤 성격,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진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명쾌하게 보일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만 그들이 보편적 시민으로서 권리를 갖게 되고, 제도가 만들어지고, 사회보장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면서 사회가 변화하게 되는 것 같아요. 퀴어문화축젠는 그 과정 중의 하나라고 봐요.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사회에 드러내고,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그래야만 성소수자를 위한,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나 생각을 해요. 문화는 경험이예요. 사람은 경험을 통해 생각하고, 그로 인해 가치관도 바뀌잖아요. 접촉하고, 느끼고, 퀴어문화축제는 그런 경험을 제공하는 장이고, 사회에 가시적으로 표출하는 장이며, 누군가에게는 억눌렸던 것을 한껏 풀어내고, 털어내고, 리프레쉬(refresh) 할 수 있는 장이죠.


진선  리프레쉬, 확 와 닿네요.


강명진  너무나 스트레스가 컸을 거예요.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이성애 중심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성소수자로서 살아간다는 건 너무도 힘든 일이니까요. 퀴어문화축제는 다양한 형태의 정체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진선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보지 않은 분들께 한 말씀 해주신다면?


강명진  사실은 한 번 와보시라는 말 밖에 드릴 수밖에 없어요. 직접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이런 것이다’라고 아무리 설명을 드려봐야, 명쾌하게 ‘이거 구나’라고 느끼지 못하실 것 같아요. 언론에 비춰지는 해외의 퍼레이드, 축제들 어마어마하죠. 그런데 그건 기자라는 화자를 통해서 전해서 듣는 거잖아요. 그런 상태에서 전달되는 정보는, 화자의 의견이 나의 생각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차라리 축제에 나와 보시고, 날것 그대로의 상황을 경험해보시는 게 정답인 것 같아요.


진선  현장에서 느껴보라는 말씀이군요.


강명진  네, 한번 뛰어보시고, 즐겨보시는 거죠. 물론 부담스러우실 수 있어요. 안타깝게 시간이 안 맞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한 번 쯤은 시간 내셔서 들러보시면 퀴어문화축제가 왜 개최되는지, 왜 있어야만 하는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서울 시청 광장에 무지개가 뜨기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강명진 조직위원장님의 말씀대로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살아있는 축제의 현장을 함께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다 함께 외쳐봅시다. Queer I am. 우리 존재 파이팅!

 

인터뷰어_퀴어문화축제 홍보팀 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