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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제10호_People]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의 윤성호 감독

2016-06-10


Q1) 간단한 인사 말씀 부탁 드립니다

예, 영화도 만들고 시트콤도 만들고 요새는 또 웹을 통해 ‘출출한 여자’ ‘대세는 백합’ 등의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는 윤성호라고 합니다.


Q2) 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 알고 계신지, 알고 계시다면 혹시 참가 해 본적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으하, 당연히 알죠. 말 나온 김에 새삼 홈페이지 들어가서 퀴어문화축제 연혁을 찾아봤는데.. 지난 십여년 저와 왕래해온 참 많은 분들이 1회 때부터 이 축제의 주요 멤버로 함께 해온 걸 다시 확인합니다. 음, 콕 찝어 퀴어문화축제의 어떤 프로그램에 주체적으로 참여한 적은 없었습니다만, 제가 지금의 경력을 한국독립영화 씬에서 시작하다보니 이래저래 멤버(?)들과의 인연이 많아요. 지금의 다종다기한 매체 풍경 속에서 요새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기세나 컬러가 평평/밋밋해진 느낌은 없지 않아 있지만 (퀴어 문화 운동은 더욱 컬러풀해진 듯한데 말이죠), 아무래도 한국 독립영화와와 퀴어운동 진영에 교집합이 되는 멤버가 많다보니.. 필연적으로, 자연스럽게, 다양하게.. 인연들이 생겼던 기억.. 그런 지인들과 동행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Q3) 웹 드라마 [대세는 백합], 퀴어 네티즌에게 매우 인기 있었는데요. 이렇게까지 인기 있을 줄 짐작 하셨나요? 인기의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양가적인 답을 드려야 되는데.. 일단, 저희는 지금보다 더 인기를 끌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불특정 다수의 이성애자 네티즌들한테도요. 그런 면에서는 지금 정도의 반응(재생수? 이슈의 지속성? 등등)은 오히려 아쉽죠. 공개 하루만에 19금 성인 인증으로 막히기도 했고 (특히 십대들이 좋아할 거라 기대했는데 ㅎ)… 

한편으로, 저희는.. 퀴어 네티즌들로부터는 인기 또는 지지를 충분히 못 받을 수도 있단 생각도 했어요. 어쩌다보니 여기 투입된 대부분의 인력들이 이성애자였는데요 (제 지인 중에서 성소수인 분들은 대개 연출, writing 보다는 다른 쪽에 종사를 하고 계시고.. 음, 아니다, 현업 연출들도 많네요, 근데 다들 워낙 자기 길이 확고하고 그쪽으로 잘 나가셔서.. 제가 기획한 작은 프로젝트에 쪼인을 권하기는 저희가 버겁거나… 미적인 코드가 다르거나.. ㅎㅎㅎㅎ.) 암튼, 저희가 아무리 개인적으로 레즈비언 또는 게이인 지인들과 친근하다 해도, 그리고 이곳의 다른 이성애자 창작자들에 비해 퀴어 감수성이 조금은 나은 편이라 하더라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분명 있지요.

한국 사회라는 곳에 LGBT 분들을 괴롭히는 관습과 편견의 장벽이 분명 있는데, 거기에 대항하는 명시적인 투쟁의 서사랄까, 그런 류의 퀴어 영화를 저 그리고 임오정, 한인미 감독이 직접 연출한 적은 없거든요 (다른 식의 연대는 있었지만), 근데 그런 부분을 스킵하고 ‘유희’의 성격이 강한 웹 시리즈를 저희 브랜드로 뙇- 선보이는 거니까.. 어떤 핀잔이나 아쉬움의 멘트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면 그것도 다 잘 듣고, 수렴할 건 수렴하자 마음을 먹었었구요.

아, 그런데 퀴어 네티즌의 반응들도 대개 호의적이시고, 호모포비아인 사람들이 공격하면 또 논리정연하게 댓글로 싸워주시고, 뭣보다 이 소품을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서도 호기롭게 늠름하게 즐겨주시고 해서..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고.. 그랬습니다. 이게 그냥 이성애자 청중의 박수보다 더 소중하고 기분 좋은 게… ‘대세는 백합’ 식의 거두절미한 도약이 선사할 쾌감과 효용에 대해서.. 저희도 일종의 베팅을 한 셈인데.. 그걸 파하하 웃으며 함께 해주신 거잖아요, 감사하죠, 즐겨준 분들, 즐길 준비가 되어 있으셨던 청중 분들이 인기의 제일 큰 몫을 해주신 거구요, 그 다음으로 저희와 함께한 배우들(정연주 김혜준 박희본 재이)의 남다른 매력들이 또 큰 몫을 했구요. 이 배우들이 정말 현장에서도 그렇고 늠름했어요, 덕분에 작은 규모로나마 밀고 나갈 수 있었고, 고마운 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Q4) 감독뿐만 아니라 각본도 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미디어에서는 게이는 다루지만 레즈비언은 잘 다루지 않았었는데요. 소재를 ‘레즈비언’으로 정한 계기가 있으시다면? 그리고 어떤 자료를 참고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제 지난 작업들에도 퀴어 인구가 항상 10~20 프로 정도 비중을 차지하긴 했었어요. 게이도 있고, 레즈비언도 있고, 바이도 있었고.. 그러면 꼭 한번씩 영화제나 상영회 같은 데서 질문이 나와요. “감독님은 이성애자인 것으로 아는데, 게다가 퀴어 영화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꼭 성소수자 캐릭터가 한 명 이상은 등장하느냐?” .. 글쎄.. 저는 답이 너무 간단해요, 그냥.. 실재하는 인구분포가 제 작업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제가 대단한 장르극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옆에서 본 것 같은 인물들이 일상에서 어떤 난감한 상황을 맞고 (가령 연인이 갑자기 헤어지자고 한다든지), 그 이후에 지인들과 겪는 소소하고 아이러니한 모험을 극으로 옮기는 사람인데 (그러니까 ‘시트콤’에 해당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은데).. 그럼 결국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와 계절을 자꾸 담게 되잖아요. 따라서 제가 사는 한국, 서울, 여름, 겨울.. 이때 주위를 스치는 캐릭터들의 고민이나 인구 분포를 자연스레 담게 되는 것 같아요.

아, 근데 이번엔 왜 주인공들이 레즈비언이었느냐.. 음.. 제가 아마 대학생 때 처음으로 친분을 맺은 성소수자가 레즈비언이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상대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인지하면서 친분을 맺은 분이요 (그 이전에 디나이얼이거나 클로짓이거나.. 그런 분들도 제 인맥에 있었을 듯은 하지만.. 어쨌든..), 게이로 커밍아웃한 형들과는 쫌 나중에 인사를 나누게 됐고... 그래서 그러려나? 음.. 근데 이건 별로 답이 안 될 듯 하고..

이런 건 있어요, 게이 성정체성을 일찌감치 커밍아웃한 감독님들, 가령 이송희일, 소준문, 이혁상, 김조광수.. 다 아는 분들인데.. 뭐랄까, 이분들이 본인들과 같은 젠더들을 주로 다루시잖아요. 퀴어 영화에서도 게이가 좀 더 주류랄까 ㅎㅎㅎ 따라서 저희는 조금이라도 덜 다뤄진 영역을 동료들과 일구고 싶었던 건 있어요.. 아, 그리고 제 인맥만 놓고 봤을 때 남성 연출자들보다 여성 연출자들의 실력이 좀 더 뛰어나거든요 (귀납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제 주변은 그래요). 어차피 시스젠더 연출자가 성소수자 이야기를 다룬다면.. 남성 시스젠더보다는 여성 시스젠더와 함께 하는 게 저한텐 나은 선택인 거죠. 그렇게 얘기를 던져본 여성 감독님들도 레즈비언 캐릭터에 의욕을 보였기 때문도 있구요.

더불어, 요새 ‘Girl Crush’ 가 대중문화의 키워드 잖아요. 아직 꽤 경직되어있는 이곳에서 뭔가 쫌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려면 ‘이게 대중적으로도 반향이 있을 것이다’ 라는 근거를 들며 파트너 (스탭이든, 배우든, 배우의 소속사든, 투자나 유통을 하는 분들이든) 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확실히 ‘걸크러쉬’라는 단어가 작년엔 Key – word 역할을 하더라구요. 그래설라무네.. 솔직히 물 들어올 때 노 저은.. 그런 것도 큽니닷!

아, 참고한 자료를 물으셨는데, 음, 이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드리기가 좀 어려운 것이, 어떤 특정 자료를 참고했다기보다는.. 그냥 위에 말한 것처럼 직간접적으로 마주쳐온 분들의 인상, 에피소드, 대화 등등이 다 작용했던 것 같아요. 물론 레퍼런스가 된 기존의 다른 매체물들도 분명 많긴 한데.. 그걸 열거하다보면 오히려 오해가 있을 것 같고.. (열거하는 순서대로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고, 진짜 중요한 소스가 됐는데 지금 얘기하다 빠뜨릴 수 있는 것들도 있고, 또 퀴어물로 분류되지 않을 작업들 중에서 오히려 영감을 더 많이 준 것도 있고 해서..) .. 그냥 저희가 아는 사람들, 봐온 사람들이 제일 큰 레퍼런스였던 셈이에요.


Q5) 감독님을 비롯하여 [대세는 백합]팀이 퀴어문화축제에 지지발언이나 응원의 말씀을 전해주시면 매우 멋진 축제가 될 것 같습니다. 올해 퀴어문화축제에 혹시 참여할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팀이라…. 이게 어떤 꾸준히 왕래해온 ‘커뮤니티’가 만들었다기보다는 헤쳐 모여식의 ‘프로젝트’ 였던 셈이라 ㅎㅎㅎ 그래서 팀 단위로 어찌될 지는 모르겠구요 ㅎㅎ 퀴어문화축제 기간 동안에 재밌게 함께 할 일이 있다면 좋죠. 저는 일단 같은 기간 열리는 퀴어필름 페스티벌에서 한국 단편들을 좀 섭렵해야겠네요 (우리도 초대해주시면 재밌었을텐데 ㅠㅠ). 아, 작년 퀴어 퍼레이드에서도 여러 장면들이 있었던 걸 아는데.. 크.. 이번에도 싫은 사고보다 짜릿한 순간이 더 많으시길 바라구요.

암튼 저희가 무슨 팀이 아니다보니, 제가 멋대로 대표 워딩을 정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문장력이 별로여서..). 그래도 지지, 응원의 말씀을 전해드리자면 - 위에 너무 블라블라거렸으니까 이건 짧고 굵게 - 대세는 퀴어! 대세는 퀴어 레볼루션! .. 안개 같은 보편의 무엇이 아닌 각각의 고유한, 다른 색깔의, 디테일한 사랑들이, 헤쳤다 모였다 하며 우리를 우리이게, 드라마를 드라마이게,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 참.. ‘대세는 백합’ 공개하고 저희 주연 배우들 첫 인터뷰 날, 배우들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요, 이날 제가 괜한 노파심에 미리 잔소리를 좀 하고 있었거든요. “이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일 뿐 이라는 식의 나이브한 답은 지양하는 게 좋겠다, 그게 오히려 뭔가 회피성 발언일 수 있고” 어쩌구 저쩌구 딱 맨스플레인 식으로다가 블라블라 거렸더니 배우분들이 되려 "아니 당연하죠, 이건 여자들끼리의 완전 멋진 로맨스죠" 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거 좀 멋지다 생각했는데.. 이게 혹시 모종의 답이 될 수 있을지....


Q6) 마지막으로 한국의 퀴어들과 퀴어문화축제에 한 말씀 해주신다면?

한국.. 참.. 앞으로가 더 걱정인 나라잖아요. 그곳에서 우리가 동행하고 있는 걸 압니다, 덕분에 저는, 저희는, ‘대세는 백합’은 힘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우리 모두에게 버틸 일, 견딜 일 말고 누릴 일, 즐길 일이 훠얼씬 많이 생겼음 합니다!


인터뷰어_Lesl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