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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제11호_People] 퀴어영화<울트라 블루>의 닉 네온(Nick Neon) 감독

2016-06-17

다양해진 소통매체로 사람들과의 만남은 이전보다 쉬워졌다. 하지만 우리안의 쓸쓸함은 여전히 자리하고 있고, 이를 보듬기는 더 힘들어진 것만 같다. 영화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감독이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서 머뭇거리는 순간, 지독하게 찌질한 순간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왠지 자조 섞인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회색도시를 채색하고 싶은 우리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영화 <울트라 블루>는 이러한 쓸쓸함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는데, 사랑 후의 쓸쓸함을 날카롭고 감각적인 연출로 담아낸 닉네온 감독에게 영화에 대해 물어보았다.



울트라 블루 / Ultra Bleu

감독 닉 네온 | 섹션 - 국내단편 1 :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16/18 토 16:45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 2관

 

Q1_안녕하세요 감독님. <울트라 블루>라는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울트라 블루>는 제 20대 시절의 젊음과 좌절을 분출시킨 결과물입니다. 당시에 저는 무척 아픈 이별을 겪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조각나는 것처럼 너무 아파서 어느 순간에는 자학을 하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에는 이별을 분석하고 있더군요. 내가 왜 이렇게 가슴 아파하는지, 전 애인을 잊어가는 것보다 내 자신에게 몰두했습니다. 그가 내 인생에서 영영 사라져버렸을 때, 별 수 없이 저는 있는 그대로의 제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어요.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요. <울트라 블루>는 내가 20대에서 어떻게 어른이 되는 길을 찾게 되는지 탐구하는 여행 그 자체입니다.


Q2_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에는 용기가 필요했을텐데, 제작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 스스로가 자유로워지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내 삶 속의 무수히 많은 가슴 아팠던 일들과 혼란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치료사를 만나 상담을 받는 것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제 경우에는 펜과 종이, 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Q3_비전문배우를 기용하였는데, 배우캐스팅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에 따른 힘든 점이 있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살아오면서 직접 마주쳤던 사람들을 캐스팅 했어요. 사실 예산을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직업이 배우가 아닌 사람들이 더 섬세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추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직감을 믿었던 거죠. 물론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확실하게 리허설을 하고, 충분히 대본을 리딩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준비와 연습은 유일한 보험이었고, 배우들은 저에게 언제나 최고를 선사해주었습니다.


Q4_영화를 감상하며 감각적인 색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촬영 시 이를 위해 특별히 신경쓰신 부분이 있으셨나요?

감사합니다. 정말 색감에 대해 많이 고민했거든요. 저는 이 영화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겼으면 했어요. 보통 드라마에서는 과하게 보이거나, 초현실적이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없지만, 영화는 그것과는 별개니까 영상이 꿈처럼 보여지기를 원했습니다. 저의 기억 속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했던 혼란스러운 색감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촬영기법은 그런 오래된 꿈들을 재현할 뿐이었어요.


Q5_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이별을 겪는 과정 속에 느낀 관계의 어려움’과 ‘외롭게 타지생활을 하는 주인공의 상황’을 유비해서 인물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와 이에 따른 공간 설정에 대한 감독님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주인공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Jim의 아파트를 사용했어요. 그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뒤섞이는 그 네모난 방 안에서 갇혀버렸죠. 그가 방을 청소하는 건, 마음을 정리하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전 애인이 이 집을 떠났던 그 때가 떠오르고 말아요. 이런 상황들은 그를 강가로 이끌고, 거기서 딘이라는 남자를 만나죠. 주인공은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보다 인생에는 더 큰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Q6_좋아하는 멜로드라마는 무엇인가요?

<엘레멘탈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좋아해요. 캐릭터나 테마가 섬세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어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조차 사랑하게 되는, 그런 기억 속에 남은 순간을 포착한 영화제작자와 배우들을 존경합니다. 마음을 무척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예요.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저는 항상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Q7_서울을 배경으로 촬영하시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감독님에게 서울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Jim의 베스트 프렌드 JK를 찍을 때였어요. 우리는 촬영지로 선택한 농구장 코트가 통째로 비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가 추석 연휴였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다음날 행사 때문에 몇 백개의 의자가 코트 가득 깔려있더라고요. 급하게 촬영 일정을 수정해야 했어요. 하지만 빠르게 대처했기 때문에 단 한 사람도 불평,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커다란 공터에 있던 그 의자들도 꽤 멋있는 장면이었던 것 같네요.

서울은 제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준 두 번째 고향이예요. 저의 어머니는 한국인었지만, 우리는 함께 뉴욕에서 살았죠. 21살 때 한국에 왔는데, 지금 벌써 29살이 됐네요. 저의 20대를 엄마의 고향에서 보낸거예요. 서울은 무척 아름다운 도시예요. 엄청난 에너지와 문화로 가득 차 있는.


Q8_차기 작품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우리는 지금 <울트라 블루>의 장편 버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 현재는 대본 작업을 하고 있는데, 투자자를 찾게 되면 아마 내년 봄 쯤에는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단편 영화는 장편의 호흡을 하는 데 앞선 서막이고, 저의 20대에 보내는 러브레터예요. 나의 20대, 서울 한복판에서 방황하며 겪었던 모든 상심과 기쁨들이 응축되어 있죠.


Q9_퀴어영화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먼저 이 영화를 보러 와 주신 관객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퀴어들의 삶을 노출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한국인들, 혹은 국제적으로도, 현재 서울에 다양한 형태의 퀴어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저희의 활동을 지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소셜미디어나 글이나, 혹은 누군가와의 대화로도 당신의 감상이 공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서울, 저희는 새로운 마법을 부릴 준비를 해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