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제5회 제주퀴어프라이드 출장 후기

2024-07-23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와 멀리서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제주에 무지개가 피어나는 날, 그날은 비가 거세게 내렸다. 아침부터 호텔에서 바라보던 하늘이 우중충하더니 기어코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여행 내내 오락가락하던 비가 하필 이날에 쏟아지다니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바다를 바라보며 피워내는 무지개는 어떤 풍경일까? 무척이나 기대가 되던 이번 제주 행사는 기대했던 것에 충분히 충족되고도 남았다. 흐린 날이라 수평선도 흐릿하게 숨었지만 저 멀리 물안개와 함께 일렁이는 섶섬의 모습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리고 그 앞의 공원에서 진행하는 이번 행사는 기억에 가장 강렬히 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퀴어프라이드로 이름이 바뀐 후 처음으로 열린다고 한 이번 행사는 바뀐 이름과 더불어 처음으로 서귀포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고 한다. ‘제주'하면 떠오르는 섬의 이미지와 바다의 이미지를 한껏 활용한 행사의 모습으로 보였다. 서귀포에서 외친 우리의 목소리가 드넓은 바다 앞에서 펼쳐져 멀리 뻗어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양말도 다 젖고, 발도 다 젖고, 신고 간 샌들도 모두 젖고 온몸이 빗물투성이가 되어도 즐거운 행사는 계속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인사들의 연대발언, 바다를 배경으로 두고 풀밭에서 진행된 서클댄스 등은 평화로운 제주의 분위기를 잘 담아낸다고 생각되었다. 또 부스에 찾아오시는 분들은 서울에서 온 우리에게 멀리서 온 손님이라며 반가움의 인사를 끝없이 전해주었다.

기존에 계획한 행진 시간에 더 거센 폭우가 쏟아질 거란 예보가 있어, 거리 행진이 비가 잠잠한 틈을 타 진행되었다. 서귀포의 거리에서 처음 외친 퀴어의 목소리라는 설명도 행진 중간에 더해졌다. 생경한 광경으로 행진을 바라보는 시민들도 있고, 환영하는 의미로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제주는 이런 곳이었음을 조금 더 체감하게 되는 행진이었다.

요새는 혐오세력들이, 혹은 무지한 사람들이 무조건 퀴어가 나쁘다는 말을 얼굴을 맞대고 직접 내뱉는 일이 거의 없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다른 지역의 퀴퍼를 다니다 보면 면대면으로 혐오표현을 내뱉는 사람들을 왕왕 만난다. 퀴어퍼레이드가 계속해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목소리를 더 크게 내게 된다면 이런 말들이 잘못된 말들이라는 것을 알고, 적어도 직접 당사자에게 내뱉는 말들이 무례라는 것을 알게 되어 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있는데 서귀포에서는 처음이라 그런지 시민들이 대놓고 이런 말들을 하는 경우가 있었고, 전해 듣기도 했다. 계속해서 모든 지역에서 퀴퍼가 이어져야 하는 이유가 체감되는 순간들이었다.

행진이 끝나고 예보된 비가 내렸지만 뺄라지다 팀의 타악공연이 행사장을 뒤집어놓았고(!) 공연을 보던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분위기는 장퀴자랑까지 이어져 정말 ‘즐겁게' 행사가 마무리가 되었다. 서울에서 몇 백 킬로를 날아서 만난 무지개는 그날은 마무리되었지만, 다들 삼삼오오 흩어져 시내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집과 숙소에서 젖은 몸을 말리며 계속해서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제주에도 이렇게 퀴어들이 살고 있음을 알려줄 수 있게 해준 제주퀴어프라이드 행사와 이를 준비한 조직위원들에게 정말 고생하셨다고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Seoul Queer Culture Festival Organizing Committ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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